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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람

2018.10.?~2018.11.01. 23:14

훈련소로부터 시작되어 의경교육센터까지 끌어왔던,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생각거리

 


 

2018.12.18. 21:30~

 

개요

 

그저 막연히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사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체화조차 없이

처음 본 멋진 사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을 거다.

그가 써 내려가는 글귀 하나하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와닿아 의미있어 보였고 거기엔 확신이 있어보였다.

무분별한 확신은 아집으로 이어지련만 그는 바른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고,

그건 아름다웠다.

 

그 확신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미래를 가리켰고, 이상하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미래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기대는 멋들어지지 못하다.

근본 없는 자신감처럼 초라한 것도 없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확신이 가진 밑과 끝 혹은 근본이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가.

막연히 궁금할 뿐이었다. 그러나 궁금해 하는 것만이 내 최선이었다.

대인적 관계를 맺어본 시간, 하물며 대화를 나눠본 시간조차 도합 만 일주일에도 닿을 수 없었기에.

 

 

타당성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가 내 인생에 최초로 직접 상정된 위인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충분한 객관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SNS를 통해 그의 삶을 보며 '주관적으로 타당한 위인'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물론 SNS가 얼마나 사람 본연의 상을 보여주는 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대다수라는 사실은 그 허구성을 반증한다.

그러나 내 주관에서 보건데 허세, 위선으로 엮긴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냄새가 났다. 사람냄새.

처음으로 맡아본 사람냄새로부터의 진정성은 내게 만족을 주었다(인생의 위인을 만났음에 대한 만족이다).

하지만 만족 끝엔 여전히 의문이 있었다.

최소한 내 멋대로라도 스스로의 타당성에 냄새따위의 모호함이 아닌 구체적 표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그를·존경하는가?'

 

 

어쩌면 해답

 

그는 스스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자신만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여기서 하느님을 들먹이며 어떤 길은 있을 것처럼 내던진다.

또 그는 자신의 낮음을 강조한다.

내가 보기에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날 것이며 순수하지만 그렇기에 놀라우리만큼 고귀한데, 자신은 별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정보다도 확실한 건 그를 통해 본 그의 비전이다.

그게 하느님의 소명이라는 것인지 뭐라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고,

그의 말과 행동에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바로, 바름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

 

순수하게 바른 것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 또 좋아하는 것을 열렬히도 좋아할 줄 안다는 것은

그사람의 인생에 확신을 주고 있는 중요한 원천이었고, 더불어 

그것은 나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확신을 주고 있었다.

나는 당시 나의 인생을 빛이 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하는데,

그것은 단지 긍정을 배우고 하느님을 만나고 했던 것들 보다도

내가 옳은 것, 즉 바른 것과 아름다운 것을 향하고 있었다는 일련의 확신들과

우연히도 좋아하는 것들을 폭넓고도 열렬하게 경험하던 시기였기에 그랬으리라 생각해본다.

 

 

결론

 

지금의 나는 여전히 바른 것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다만 그건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객체적이며 심지어는 얼핏 목적적이라는 데에서 전과 다르다.

보다 주체적이라 함은 대상을 현상적이라기 보단 보편적이며 원론적인 차원에서 사고하여 다루어 전달할 때를 의미한다.

자칫 추상적일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괜찮을 정도의 상태. 딱 그 정도로 그것을 다루는 것이 주체적인 감상이다.

그는 그랬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심미의 모든 것들이 어떤 목적으로부터 헤어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내가 전하려는 바들이 오롯이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 위트는 꼭 더해져야만 하는데

그건 나를 포함한 모든 살마들에게 이롭게 작용하는 것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할 수록 그와 그가 전하려는 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그를 닮으려했던 것으로 부터 나는 축구를 좋아하려 했고, 영어를 잘 하고 싶었으며, 긍정하고 싶었고, 하느님 아래에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난생 처음 축구화를 샀고, 영어 공부를 미친듯이 했으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와 생각해보건데,

그는 확실하게 나의 인생에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여전히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너무나도 부족한 내가.

여전히 나는 축구를 잘 하고싶고, 영어를 잘하려 노력하고 있고, 긍정하며, 하느님 아래에서 살고 있다.

앞으로도 분명히 노력할 것이고 그렇다며 더 지혜롭고, 더 건강할 수 있을 것이기에.

다만 단, 그를 지향하되 나로서의 정체를 확립하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속물음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잇는 나로, 좀 더 멋있게, 내적·외적 모든 곳에서.

그런다면 성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2020년 5월 11일 그 날과 그 이후의 날들을 위해.

 


 

2018.12.21. 09:58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