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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의 여유

꼬마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내가 보는 저 구름을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Why> 덕분인지 왜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구름은 비가되어 내리고 그 비로 내린것들은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비는 한참을 흐르고 또 흘러야 바다로 나게 되는데, 길고 길게 흐르는 역사 중에 어쩌다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면 다시 구름이 되어 하늘을 날고 있을거라고.
그러면 당연히 그 구름을 다시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깐.

그러자 아빠는 그저 어린아이의 질문이었을까하는 질문에
“글쎄? 아마 못 보지 않을까?”
하고 대답한다.

“왜요왜요? 왜 우린 저 구름을 다시 볼 수 없나요?”하는 물음에는

알프스의 어느 언덕 이름이 등장하고, 바다의 산호도 등장했다가 그 틈에서 꼬물거리며 나온 물고기가 머금고 저 바다로 가져가버리면 우린 못 볼 것 같아. 다시말해서 앞으로 저 구름이 할만한 여행이 많이 있으니까. 그러면 너무 오래 걸리니까. 그러면 우린 못 볼 것 같아.

할거다.

꼬맹이는 이미 다시 보지 못한다는 데에서 풀이 죽어서 
그 때 서 있는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이라면 구름을 조금 더 빨리 옆으로 밀어내고 밀어내어 다시 제 앞으로 가져다 줄 수 있을거라고 뚱하니 생각한다.

한참은 어릴 때인데
지금 다시 그 질문을 한다면, 
아빠는 똑같이 우린 보지 못할 거라고 답하실거다. 
근데 이제 난 과학의 원리를 알기 때문에 알프스니 물고기니하는 얘기는 등장하지 않을 거고, 또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물이 만드는 역사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도 알아서 
황량한 사막 어느 낙타의 물주머니에 담겨 있을지 당장 새벽녘에 편의점에서 누가 사갈 삼다수에 담겨버릴지도 모를 일이 되어버렸다. 아니 뭐 그렇게 된다면 정말 다행이겠다. 그만해도 꽤 가까이 있는 거니깐.

그래서 하늘을 자주 보자했다.
구름이 걸린 하늘을 볼때마다 그 생각을 했다.
저 구름이 내가 봤던 구름일까,
그게 아니면 그저 다시 만날 확률은 높이기 위해서
어디서 왔을지 모르는 저 구름을 단숨에 훑어버리면, 언젠가 다시 마주칠 우연이 많아질거야.
하면서.

인생이라는 상자에 관계나 꿈 혹은 근심 등의 것을 가득 채우고 그리고 그 틈을 잡다한 것들로 촘촘히 메워도 홍차 한 잔의 여유는 그 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여유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으면 가까이 있고, 삶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

누가 그러더라
“하루에 하늘을 세번 보면 참 여유로운 사람이다.”
하늘을 보자, 여유를 갖자.
여유와 나태는 다르다 그 둘을 햇갈리지 말자
아니지 다르지 않으면 또 나쁠 것은 무언가.
그러니깐 하늘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