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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걸음의 드라마>




지난 학기 기말고사 기간 무렵 즈음 해서 시험공부를 하다 기범이랑 용산으로 바람 쐰다는 핑계로 시험공부 농땡이 삼아 영화를 보러 갔었다. 
영화가 끝나고 이러니 저러니 얘기를 하다가, 꽤 쌀쌀한 겨울 공기를 갈라가며 걸어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강대교를 퇴근시간 이후에 건너다 보면 노들섬 초입에 오뎅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가 하나 있는데, 그날따라 둘 다 거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에 들어갔지만 너도 나도 현금이 없었다. 계좌이체를 하려했지만 핸드폰도 꺼져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국 그 길로 학교로 돌아오던 때. 왜인지 자꾸만 미련이 남아서는 저 끝무렵 편의점에서 기어코 현금인출을 해내어 다시 한강대교 가운데로 들어왔다.


아저씨한테 “아임백”을 당당히 외치는 듯 한 기세로 그 트럭 앞에 서서는 금새 그 따듯하니 얼큰한 우동과 오뎅을 해치워 버린다.


그 날이 계기가 되어 기범이와는 흑석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었고, 흑석동의 어떤 정취로 시작해 최근 롯데건설을 주축으로 ‘강남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그 거대한 사업으로 이루어지는 주민들의 속사정을 담아보고자 한 것이다.


오늘 상도에서 과외가 끝나고 무슨 끌림이었는지 딱히 목적도 없이 학교로 가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을 내딛었고 상도터널을 지나 어느새 한강대교 위에 몸을 올렸다. 그냥. 



그곳에 가면 언제나 탁 트이는 시야와 공기, 올림픽 대로 위의 도시의 별들을 보는게 그냥 좋으니 자연스레.
그러다가는 문득 최근, 2019년 준공을 목표로 노들섬 재정비 사업을 시작한 게 생각나서 노들섬으로 간다.


노들섬은 내게 영화속 영화 같은 곳이다. 가끔 잡념이나 눈꼼만한 스트레스들 따위가 마음을 무겁게 할 때면 노들섬 옆길에 무너질듯한 철재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그 끄트머리에 있는 넓디 넓은 헬기착륙장에 가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낡디 낡아 버려진듯한 느낌을 주기까지하는, 동작과 용산 사이 이 공간이 사람이 북적이도록 엎어진다는 것은 무언가 이 사람 많은 서울 속 자그마한 쉼터까지 없애버리려는 무자비한 욕심으로 생각되어 괜한 연민이 생긴 탓에 그 마지막 얼굴을 보고자 했음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헬기착륙장으로는 가지 못하도록 막혀있었고, 높은 공사장 외벽으로 둘러싸여 어떤 작별인사도 못하게 되있더라.


그내 쓸쓸한 마음 탓인지, 아니면 그냥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 탓인지 급 추워 바로 앞에 역시나 묵묵히 서 있는 ‘그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택시운전사 아저씨들의 터전인 그 공간에서 나름 익숙해 보이려했는지 자연스러운 척 오뎅 두개를 달라며 천원을 건넸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는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어주셔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그 당시 기범이와 있었던 애피소드를 꺼낸다. 
그날 밤, 둘이서는 꼭 추억으로 남겨야 된다며 그저 웃으며 우리를 보고계시던 아저씨께서 감사히 핸드폰을 빌려주신 덕에 사진을 찍는 등 난리를 폈던 터라 아저씨도 기억한다 하셨다.


꽤 긴 이야기 끝에 지금 계획하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씀을 드려보았다. 돌아온 건 생각지도 못하던, 꽤 쏠쏠한 어쩌면 씁쓸한 그 사정이었다. 흑석동에 지금 있는 그 시장이 원래의 전통시장을 한번 엎은 시장이며, 그 후 그곳의 터줏대감으로 있던 몇몇 상인들이 떠나간 이야기. 그나마도 재개발이 지연되는 이유 등 그런 정말 그곳의 이야기들을 어찌어찌 나누게 되었다.


재개발을 지향해야한다든지 지양해야한다든지에 대한 어떤 가치판단을 담아내고 싶진 않았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첫 인터뷰를 그렇게 우연히 하게 되면서 들은 이야기들 굉장히 흥미로웠고, 능한 이야기꾼이었던 아저씨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꽤 오래 그들의 전래(동)화를 듣고 왔다. 
그런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취해있었다.

한참을 이야기를 마치고 인사드리고 돌아오며 생명의 다리라는 한강대교의 주황 조명 속에서 또 사색에 잠긴다.


이런 일들. 나의 발걸음의 우연이 간혹 담아내는 삶의 드라마들을 들을 때가 참 재미있는데, 그게 내가 걸음걸음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미루지 말고 이제 그 드라마를 담아내고 싶어졌고, 짭잘하니 게가 우러난 그 육수가 든 종이컵의 훈훈한 온기를 빼았으며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