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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합시다.

은사님, 당신과 #8

 

 

 

 

이제 우리가 만난다는 건 더는 성대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

 

이번에 왜인지 당신은 시종일관 내 걱정을 해댔다.

힘든 일이 있냐고 묻는다거나, 피곤한게 아니냐며.

나는 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햇갈렸는데 우리의 이야기가 깊어질 수록 당신에 내 속을 긁어내보였더니

당신이 본 힘듦이 드러나더라.

 

내 생각에 당신과 나는 서로를만나 얘기할 때면 굉장히도 서로에 집중한다.

그렇게 생각한건 특히 이번에, 사실 나는 내 힘듦을 털어 놓는다는 사실에 닿기도 전에 당신의 무언 힘듦을 보았다.

잠잠간에 아픔을 겪어온 당신이 건강을 위해 한 다이어트는 건강하게도 보이게 해 준 한편, 기운을 많이 잃었나보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조금 어리게도, 어리석게도 사우나에서 당신 어깨를 주무르다

선종이니 뭐니하는 종양에 관한 수술을 했다고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의 이별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평생의 연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온전히 나의 평생이 아닐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

 

나는 원래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볼때면 소름끼치게 무섭곤 했다.

인간에게 두려움이란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도 이 죽음은 살아있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에 철저한 무지의 베일에 쌓여있고

따라서 살아있는 그 누구라도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게다가 기독교라는 이름 하에 신앙심이 그리 깊지도 않은 나는, 영적인 죽음보다 과학적 죽음에 물음을 많이 던지곤 하는데

그렇다면 결국 죽음은 무(無)라는 너무도 허무한 결말을 내어놓아 나를 좌절시킨다.

 

 

내 기억이 최초로 시작되는 때로부터 내 삶은 오로지 내 관점에서 진행되는 영화였다.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은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들은 것 내가 느끼는 감각으로만 진행되어왔기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이 세상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혐오스러운 날갯소리를 귓가에 울려대다 운명하신 고(故) 모기 님과

아마 고등학교 2학년 쯤 화장실에서 마주하였다 변기에 사체를 기리게 되신 고(故) 곱등님,

어쩌면 상쾌한 가을 공기를 가르던 나의 자전거 바큇살에 쓸려나갔을 고(故) 개미님까지도

그들만의 영화가 있었을 텐데 그리도 무심한 존재의 소멸을 맞이했다.

 

아마 혹자의 슬픔이나 추억 안녕 어쩌면 기쁨을 야기할 나의 죽음은

결국 내 자신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물며 정적조차도 죽음에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심지어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

 

감각과 감성의 노예인 나는 그래서 유독 죽음을 무서워했다.

그런 나는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공유하고만 있을 뿐 그 방향성이 아예 다른 것으로 생각했었다.

나의 죽음은 당연 슬픔을 포함하고 있지만서도 두려움에 가까운 한편

타인의 죽음은 두려움을 끼고 있지만 슬픔에 훨씬 가까운 것으로.

 

그러나 어제 그 모든것은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타인이 나와 동일시 된다면 즉,

내가 사랑하며, 내게 소중하고, 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 있을 수록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은

똑같이 두렵다.

 

-

 

그래서 당신이 담담하게 "암으로 진행되기 전 발견해서 다행이다."는 말을 했을 때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무렵 쯔음 찬물에서 혼자 첨벙거리던 준수가 말했다.

 

 

 

"형아가 아빠한테 준 상 진짜 금이야?"

 

LA에 갔을 때 할리우드에서 아카데미 상을 다양한 대상별로 만들어 놓은 것 중 'The Best Teacher'라고 적힌 상을

은사님께 올린 적이 있었다.내가 그래서

 

"나중에 진짜 금으로 된거 하나 드려야될텐데"하자 

 

"그러면 좋을텐데"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고선 뒤이어 말했다.

"네가 그렇게 성장하고 큰 사람이 되어서 그 모습까지 내가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크~" 하며 맞장구 쳤지만 항상 소설을 써 내는 당신과의 만남이 또 한 번의 명장면을 찍어내는 순간이었다.

개운하게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치킨 한 마리 뜯고 산책을 했다.

 

 

"쌤 요즘 계속 고민이 많습니다. 내 미래는 어디로 흘러가나, 꿈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런게 행복이다."

 

역시, 당신은 늘 해답을 가지고 있다.

 

-

 

아마도 정상적이라면 내 삶은 끝날 것이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정말 어쩌면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로 채워져있을 수도.

그리고 이 스승과도 언젠간 작고할테다.

 

인생에 행복은 널려있다.

그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르겠으나 이곳 저곳 우리가 마주할 행복한 순간은 많다는 것을 조금 오래 잊고있었다.

 

요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유.

냉소와 증오와 싸워나가게 되는 이유는 그 사소한 행복거리들에 내 자신을 맡기지 못해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순간을 소중하게.

누구나 두려워하는 그 순간까지 내 최선을 다해 행복할 것.

시니컬한 척 하지말고 그저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것.

 

내가 알기로 나와 당신 모두 그러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여정의 동행을 위해 당신께 건강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