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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님, 당신과 함께 ver.20190428

  이 정도면 오랜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되겠지 한다. 마음 같아서야 하루조차도 오랜만인데 최소한 100일은 건너 만났으니. '함께하는 교회'의 '함께하는'을 거진 '당신과 내가 함께하는' 정도의 주관적인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음에 쌓인 짐과 당신을 만나 반갑기 그지 없는 기쁨이 이따금 충동할 대면 시선을 주보에 돌리곤 했다. 수요공동체 모임이 휴무한다는 등의 텍스트를 마구잡이로 읽어가며.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잘 열리지 않았다. 좀 전의 감정과 더불어 사실 하나님께 좀 따지고 싶은게 있어가지고 오늘만은 탕아가 될 작정을 한 것이다. 기도를 했고 물었으니 답을 주시길. 성찬식을 하며, 살을 가장하여 빵 노릇을 한다는 얇은 비스킷을 피를 가장하여 포도주 노릇을 한다는 것에 뭍혀 얼른 입에 넣고 자리로 앉을 즈음 당신과 얘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너가 전역이 얼마나 남았지?"

  "부대 생활은 어때?"하는 가벼운 것들.

  나는 잘 지내고 있다거나 혹은 강인하다는 인상들을 재법 구겨 넣어 답한 데에서 나는 자신만만하다했더니 왜 또 그 새에서 미묘한 온도를 느꼈나. 따듯해진 봄에 고집불통으로 혼자서 수족냉증을 부리는 내 손을 어루잡으며 따스한 체온을 전한다. 사랑이 고팠나. 그 사랑이 고팠나. 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손이 그리웠던 것은 확실한 채로 두고 예배를 마무리했다.

  당신이 좋다는 것을 내가 싫어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뭘 먹고싶냐는 질문을 던지는게 웃기다는 듯. 내가 좋다는 것은 당신이 좋다할 게 분명하기에 아무거나 좋다고 답했다.

  "동태찌개 어떠냐?"

  "너무 좋죠."

  "맨날 내가 먹자하면 다 좋다하냐 너는." 하며 여린 꾸중을 하지만 그런 걸 어쩌겠냐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던 나다. 동태찌개는 맛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라기보단 이 마주 앉은 시간이 그리웠기에 밥 한공기를 더 시켰다. 아니 사실 맛있어서 였다. 아니 햇갈린다. 동태찌개는 숱하게 먹어봤는데 '고니'라는 사리는 처음 들어본다했더니 동태찌개 먹을 줄을 모른다며 놀리질 않나. 간장에 찍어먹는 법을 알려준다.

  나와서 걸을 때에는 아침부터 흐리던 하늘이 개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밝았고 따뜻했으며 행복했다는 것. 선생님, 싸부님, 아부지 하는 다양한 호칭들에서 오늘은 형을 선택했다. 형은 걸으며 손을 잡기로. 지긋이 감싸는 손이 약간은 불편해 다시 지긋이 고쳐잡았다. 그리고 걸음, 다시 걸음. 든든함에 더불어 인생의 걸음이 나란할 때 그 애틋함이 느껴진다면 나는 '형' 한다.

  이번 외박 때는 꼭 놀러가겠다는 약속으로 짧은 소회를 정리하며 형은 차에 오르고, 이어폰을 꼽고 뒤돌아 지하철역으로 걷는 나. 그리고 무언가 햇빛인줄로 기억하는 따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