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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xotic'에 관하여

2018년 11월의 마지막 날. 돈키호테를 다 읽었다.

자대로 전입온지도 3주의 시간이 흘렀고, 부대 생활에도 딱 그만큼 적응을 했다.

 

돈키호테를 처음 읽고 싶다 생각한 이유는 별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드인 뉴스룸(The Newsroom)의 시즌1의 첫 시작과 시즌3의 마지막을 'Quixote'가 열고 닫았다. 영미문화권 자체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서로를 비유하는 그 맥락을 짚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 그 시발점이었던듯 싶다.

 

스페인어로는 Don Quijote(스페인어로 j는 h로 읽는다)인 돈키호테가 영미권에서는 Quixote인데

무언가 있어보이는 듯 한 묘한 단어. 단지 그것이 시작이었다. 미국발음 [kiouti], 영국발음 [kwikset] , 특히 극 중 영국억양을 사용하는 인물의 입에서 발음되는 것은 꽤나 섹시했다.

 

 

 

 

 

 

 

 

800쪽 가까이 되는(심지어 그마저도 두 권 중 한 권일 뿐인데) 긴 이야기 내내 세르반테스가 주려는 메시지는 일관 되어 보였다. 

'이 사람(돈키호테)은 참 웃긴놈이다.', '이 놈 정말로 미친놈이다.'

 

돈키호테는 기사도가 천대받고 무시받는 당시 세상에서 자신이 그것을 다시 일으킬 위인이라 생각한다. 자신은 진실된 편력기사이며 따라서 약자를 돕고 불의를 잠식시키는 여정을 커쳐야만 한단다. 그런 뒤엔 삶의 목적이자 기사도의 절정으로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와 사랑을 이룰 것이라 굳게 다짐한다.

또한 숫하게 넘어지고, 두들겨 맞고, 욕을 한 움금 먹어도 그것 역시 과정이오 자신의 '편력기사' 이야기를 풍부하게 채워줄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하면서 정의를 위해, 둘시네아 공주를 위하여 끊임 없이 다시 일어난다.

 

지독한 이상주의자.

그 지독한 이상주의자는 수많은 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비웃음을 당하지만 때로는 그들을 감동시키거나 울림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현명한 현실주의자 종자 산초판사를 끝에서 이상주의자로 탈바꿈 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이란 게, 꿈이란 게 이런거지 싶다.

내가 정말 하고 싶다면, 그것이 옳다 생각된다면 밀고 나갈 수 있는 것.

얼마든지 비웃음 당해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만큼 확실한 것이라면 현실의 눈치나 연민은 가련히도 쓸모없다.

 

어제자 일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

'군 생활'이라는 단어가 시간 자체를 굉장히 느리게 가도록 하는 힘이 있지만, 사실 이 시간은 길다 뿐이지 빠르게 가고 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내가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잘 이용해내야 한다.

익숙해지는 일상에 나태해지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들을 이 시간이 끝나는 그 날까지 상기시키자.

"

 

'행복'

그 거창한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그 때까지 끊임 없이 달리고 부딫친다.

그 다큐멘터리는 수많은 현실주의자들을 위한, 혹은 한 명이라도 있을지 모를 나만의 산초를 위한 로시난테가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