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도시의 이야기는 정신 없는 것으로 시작되겠다.
춥다. 이 뜬금없는 늦가을 날씨는 대체 무엇인고 하니,
LA와 샌프란시스코는 모두 캘리포니아 안에 있지만 그 크기가 대충 우리나라만 하니 고 위에서 아래로 좀 내려왔다고 추운 것이다.
그냥 느낌이지, 자고 일어나서 그러려니싶었는데 내리자마자 나오는 입김을 보니
'아 아니구나!'
문제는 앞선 사건들로 핸드폰이 완전히 꺼졌다는 것이다.
[미국여행기]LA여행-3일차(산타모니카, USC, 도산안창호 선생님, 월트 디즈니홀, 유니온 스테이션)
그래서 숙소에 당장 도착하기 까지 어떤 사진도 남길 수 없었다. 그나마도 꺼지기 직전까지 외워놓은 머리 속 지도로
숙소로 향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숙소 버클리에 재학 중인 친구네 집이다. 덕분에 공짜로 묵는 것은 이득이오, 든든한 가이드가 생겨버렸다.
여정은 이러하다.
10번 버스를 타고 bart* 정류장 가까이로가 bart를 타고 Downtown Berkeley에 내릴 것이다. 내리고 나서 요래조래 한 15분 안되는 거리를 걸어가면Spruce거리가 있을 것이며 그곳의 000번지를 찾아가면 된다.
(bart*란 샌프란시스코 지하철 교통시스템의 이름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오들오들 떨며 어디 근처 아무데나에서 후드짚업하나라도 사 걸쳐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당장에는 그것보다도 숙소를 가는게 우선이기에.
10번 버스를 타는데 이게 웬걸 버스비 $3.75되시겠습니다. 당장에 어떻게든 걸어가볼 수는 있는 거리였으나, 이번 여행의 가장큰 골칫덩이인 이 캐리어 자식때문에 그러길 포기하고 응당 4500원정도를 2km 남짓한 거리 가는데에 써버린다.
Downtown Berkeley에 내리긴 했는데...이제 여기서부터 어떻게 가야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친구네 집은 Spruce st.에 위치하고 있어 역무원에게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물었다.
역무원이 Sprute St.을 안내해 주기에 거기가 아니라 Spruce라고 말을 해보지만 그 거리는 잘 모르겠단다.
어쩌지 하며 역 한켠에 꽂혀있던 브로슈어 하나를 꺼내들어 대충 짐작해보았고, 이리로 이리로 가면 될 '듯' 싶지만 애매함과 무지의 안개 속에 겁을 먹었더랬다.
걸어가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수밖에! 하는 당찬 마인드로 길을 나선지 5분도 되지 않았을 때 엄청난 배아픔이 몰려왔다.
'좃됐다.'
하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찼고, 눈앞에 바로 보이는 맥도날드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해낸다.
휴!
그러던 중 다행히 맥도날드에 앉아있는 한 중국인 부부가 어딘가 난처해보이는 나를 불렀고, 감사하게도 구글맵을 빌려주어
국제미아 신세를 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굉장히 앤틱한 분위기의 이곳의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 유럽을 모티브로 하여 건축하였고 시가는 서울 웬만한 월세는 저리가라하는 그러니까 이곳. 친구의 집.
짠!
드디어 이 망할 캐리어를 던져놓고 갓 학기를 시작하기위해 이사와 짐을 풀고있는 우태의 너른 매트리스에 안긴다.
안그래도 연락 안 돼서 걱정했다고, 툴툴거리며 야단치듯 걱정하는 츤데레 자식.
이제 아침 동이 트지도 않았을텐데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집에 같이 있던 친한 누나와 셋이 집 정리는 대충 마무리 해놓고 허기를 달래러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첫 식사는 요 두 버클리생들의 추천 타코집으로 정했다. 쉬림프타코를 추천한다. 나초는 왜 이렇게 맛있는지 여행가서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내 머리에 그렇게 박혀있는데 정신이 없어서 사지은 남기지 못했다.
'역시 로컬이 추천한 맛집이 진짜야.'
사실 이번주는 버클리 신입생들의 입학주간이다. 마치 우리나라 대학에서 OT를 진행하는 것처럼 이곳 대학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데 방식이 조금 신기했다.
학과나 단과대학별로 모여서 1박 2일 정도 여행을 떠나 술이나 부어라 마셔라 하는게 우리나라의 OT라면, 이곳은 엄청난 수의 신입생들의 전공과 단과대학에 상관없이 임의 숫자가 부여되고 그 숫자별로 조가 나뉘어 일주일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자기소개는 만국 공통 아이스브래이킹. 그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학교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을 소개받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해지는 과정인 것이다.
신입생 프로그램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있는 신입생들이다.
물론, 이 친구놈은 그 신입생 중 한명인데 나를 위해 그 프로그램을 뺐다. 고마운 놈.
그래도 기독교 모임 행사준비를 한다고 잠깐 어디 갔다온대서 나는 혼자 캠퍼스 투어를 하기로 한다.
신입생 맞이기간이라 학교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가 너무 컸다. 우리 학교로 말할 것 같으면 평지란 존재하지 않고 정문부터 후문까지 완벽한 산 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특히 한 여름 밤 늦게 기숙사 통금 시간을 지키려 뛰어가는 고난의 길은 형용하려 하면 숨이 턱 막힌다.
우선 오르막길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함을 물론이오. 학교 크기가 그냥 우리 학교가 있는 흑석동 만했다.
<UC BERCELEY CAMPUS MAP>, 저 1/20정도가 우리학교 크기정도 되려나...
이곳 우리학교로 치면 중앙도서관은 어떤 신고전주의 양식을 떠올리게 했다.
어떠한 건물이든 녹록치 않았다. 모든 것이 거대했고 모든 것엔 철학이 있었다.
마지막 사진의 시계탑은 우태와 혜인 누나의 학생증이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기간동안 막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펼쳐진 잔디밭 위에 누워보기도 하고 평범한 학생처럼 강의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면서 이곳 대학생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 가늠해본다. 자유.
그 어느 공간에서나 자유가 녹아 있다. 어쩌면 내가 그저 그렇게 보기를 원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기 커피 한잔을 들고 걸어가는 썬글라스 쓴 여자. 잔디 밭 위에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남자 둘. 뛰어다니는 청설모를 지긋이 바라보는 저 할머니까지도 무언가 다음 할 일 보다는 이 순간을 자유로이 누린다.
특히 혜인누나가 공부하길 좋아한다는 이곳 도서관은 참 대단했다. 우리나라의 도서관(특히 우리학교의 도서관)을 가 보면 환경적으로 그렇게 의도가 된 것인지,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의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그러한 것인지, 책을 읽기 위한 환경이라기 보다도 공부를 위한 공간처럼 보인다. 물론 독서도 공부의 일부이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말 그대로의 '학습적 공부'이다.
그것보다도 책을 읽기 위해 이곳에 머물러 있는 그들을 보았다.
그렇게 이곳 저곳을 서성이다가 다시 친구와 혜인 누나와 합류했다. 곧 이어 혜인 누나는 자신의 공부를 하러 떠났고 나는 이 친구와 입학식을 간다.
입학식? 참고로 나는 우리 학교의 입학식 조차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분명 들끓는 학구열이 보였고, 자신들의 자부심이 보였으며, 흥과 끼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입학식 현장. UC 버클리의 UC란 University of California의 준말이다. UC버클리 말고도 흔히 아는 UCLA역시도 UC의 일종으로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의 준말인 것이다. 이 외에도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a 등 다양한 UC가 있다. 그 중에서도 이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The CAL이라 칭한다. CALifornia의 진정한 대학은 자신들이라는 당찬 포부. 마치 서울대 학보 이름이 '대학신문' 이었던 것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들의 포부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UC버클리는 캘리포니아 주 뿐만 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꼽히는 명문 대학 중 하나이니.
어마어마하다.
이들의 열기와 열광. '대학에 들어왔으니 이제 놀아보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하고싶은 것을 향해 눈에 불을 키고 달려보겠다는 하나의 포부.
우리나라의 입학식이라면 총장인사. (박수) 교수진 (박수) 중앙대학교의 연혁 (박수) 환영 (박수)... 하는 식이었겠지만
이 사람들 입학식에서 논다.
총장이라는 사람은 나와서 하모니카와 기타를 치며 젊음과 미래를 노래한다.
총무팀장은 나와서 연설을 하며 학생들과 미친듯이 깔깔댄다.
학생회장은 나와서 당신들이 짊어져야할 이 시대의 미래. 모두의 진취와 도전에 불씨를 놓는다.
나오는 연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입생들은 열광한다. 말 그대로 열광한다. 소리지르는 그 목청엔 자신이 이 시대의 인재로서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혹은 그럴 수 있겠다는 의지를 담아낸다.
사대주의가 아니라 내가 본 사실이 그러했다.
대학에 들어오고 한 학기가 지나가는 동안 나의 학문적 탐구는 어떠했는가 나의 미래지향은 어떠했는가. 무언가 침묵 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지나가는 찰나였다. 결국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겠지.
자.
어떻게 열심히 살아보자는 성찰은 이정도로 마무리하고 이제야 드디어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러 떠나보고자 한다.
당시의 날씨를 설명해주는 이 모냥 이 꼴의 사진
첫 목적지는 트윈픽스(Twin Peaks)이다. 말따나 두개의 봉우리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한 여름이었던 그 시기 이곳은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리프트(Lyft*)를 타기로 결정했다.
Lyft*란 우버(Uber)와 함께 우리나라의 택시 시스템과 비슷한 미국의 교통 문화이다. (LA편 1일차 참고)
2017/11/04 - [이야기/여행] - [미국여행기] LA여행-1일차(할리우드 사인, 그리피스 천문대, 핑크핫도그)
흑인 여성분이었던 이번 리프트 기사님과 리프트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위 링크의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듯 소비자는 대체로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장거리 노선이라면 대체로 우버가 더 싸게 먹히고 단거리로 이동할 때라면 리프트가 조금 더 싸게 먹힌다. 물론 각각의 서비스가 제공하는 프로모션에 따라 할인을 받기도 하지만.
기사 입장에선 우버보다 리프트가 수수료를 덜 때어간다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어쩌나 저쩌나 하는 이야기들.
트윈 픽스에서 내렸다.
음.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좋게보면 장엄했고 나쁘게보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때에 조금의 긍정을 찾아내는 것이 나다운 여행이므로! 그걸 또 즐겼다.
트윈픽스(Twin Peaks) 정상에서 본 샌프란시스코...그러니까...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았다. 미친듯이 불어대는 바람이 추웠고 안개 탓에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좋았다.
그러한 트윅픽스를 나는 보았으므로.
트윈픽스 정상 조금 아래에서의 관경
꽤나 볼만하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사실 영어는 못하는 사람끼리 해야 대화가 된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스치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무언가 내 감정을 솔직히 전달하고 전달 받은 대상은 언제나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인을 만나면 자꾸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려는 그 심리(그러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정답으로 말해야 한다는 그 심리 탓에 자꾸만 버벅이고 우물쭈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프랑스인 세명과 마주쳤는데 이토록 춥고 매서운 바람 앞에서의 감회를 누나며 일순간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하면 금문교.
금문교는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영화들을 봐오며 너무나도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미국하면 생각나는 수많은 것들중에 단연코 앞선 것 중 하나였다.
다리 리프트를 부른다. (이정도면 거의 부르주아)
도착.
Golden Gate Bridge, 금문교라고 다를 것은 없다. 날씨 탓에 청량함과 쏟아질듯한 빛을 내뿜고 있진 않지만, 날씨 덕에 이 검붉은 기상이 안개에 뭍혀있어 더 장엄해보일 뿐이다.
생각보다 너무 컸기에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아쉬웠던 점이라 함은 저 위를 직접 올라가보진 못했다는 것이다.
금문교는 건너편에 있는 소살리토(다음편 등장 예정)쪽과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그래서 다운타운과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으나 그곳을 오가는 대중교통은 잘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나와 우태 모두 현금이 없다는 것이었고, 우리게 있는 것은 50달러 짜리 지폐가 유일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근처에는 돈을 바꿀만한 어떠한 상점들도 없었고 있는 몇개의 상점들은 이미 모두 문을 닫은 후였다.
버스에 50달러를 숭덩 집어넣고 탈 수도 없는 노릇일 뿐더러 카드는 먹히지도 않았다.
고심은 했으나 어쩌겠는가 또 우리의 친구 리프트를 불렀다.
버스를 탄다면 4달러 조금 안되는 돈에 갈 수 있는 거리를 20달러 가까이 주고 갔으니 그만한 낭비도 없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또 잘됐다 싶기도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저녁은 꽤나 분위기 있었다. 리프트 안으로 어떠한 음악도 없이 그저 피곤한 두 청년과 기사가 가끔 던지는 외마디가 그 공간의 유일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무성은 밖으로 돌아간 눈이 시내를 천천히 훑어 가기에 더할나위 없이 적절했던 것이었으리라.
저녁은 고민도 없었다. 우태가 자주가는 버클리의 한 동양식 집이었다. 이것이 내 기억으로 유일하게 '밥'을 먹은 끼니었다.
'Tasty Pot' 직역하자면 '맛있는 탕' 그 추운 곳을 떠돌아다니다 떠먹은 한 스푼의 탕은 온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오늘도 쉴 새 없이 걸었다.
휴식이란 내게 사치였다.
볼 것이 너무나 많았고 내가 꿈에 그리던 미국은 일분 일초를 잠시도 가만히 있게 하질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우태가 마리화나 냄새가 난다했다. 나는 그 냄새를 미국 전역을 도는 내내 분간해내지 못했지만 우태를 비롯한 나의 수많은 동행들은 그 냄새를 곧잘 찾아내곤했다.
그마저도 낭만스러우리라 하며 냄새를 쫓아보았으나 실패.
저녁은 우리나라의 그 어느 도시에 비해 굉장히 고요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첫 날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